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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정진성의 감성을 깨우다-不怨天 不尤人(불원천 불우인)
[기고] 정진성의 감성을 깨우다-不怨天 不尤人(불원천 불우인)
  • 성동저널
  • 승인 2019.09.03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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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남을 탓하지 않는다.

[성동저널] 이 말은 저희 집 家訓(가훈)이기도 합니다만 ‘論語(논어)의 憲問(헌문)편'에 나오는 말로 孔子(공자)가 스스로 자기 자신이 이러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나옵니다.

孔子(공자)가 말하기를 내가 하늘을 원망치 않고(不怨天-불원천) 남을 탓하지 않는 것은(不尤人-불우인) 深奧(심오)한 이치를 깨달은 것이니 "나를 알아주는 것은 저 하늘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는 데에서 이 말이 나옵니다.

정진성 성동저널 편집자문위원
정진성 성동저널 편집자문위원

살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실수뿐만 아니라 크나큰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습니다.

한 때는 사소한 실수를 하고도 남부끄러워 잠도 못자고 괴로워 한 적도 있습니다만, 요즈음은 도대체 뭡니까? 정말로 이해가 안 되는 厚顔無恥(후안무치)한 사람들이 득실거리니 세상이 변한건지 인간의 기본성이 변한건지 암튼 변해도 너무나 많이 변했습니다.

잘못을 저지르고 반성하기 보다는 오히려 당당한 것처럼 쌍심지 치켜뜨고 남 탓이나 制度(제도) 탓을 하니 賊反荷杖(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말입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서투른 장인이 연장 탓한다', '어설픈 무당이 장구 나무란다', '물에 빠진 소경이 개천 나무란다' 등등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말은 '잘되면 내 탓, 못되면 조상 탓'으로 남 탓만 하니 여기서 말씀드린 不怨天 不尤人(불원천 불우인)이라는 말을 꼭 새겨두어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영국의 유명한 비평가이며 역사가인 '토마스 칼라일'(1795~1881)이 말한 '걸림돌과 디딤돌'이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길을 가다가 돌이 나타나면 약자는 '걸림돌'이라 하고, 강자는 '디딤돌'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수 많은 삶의 돌을 만납니다. 그 삶의 돌을 어떤 사람은 '걸림돌'이라 하지만, 어떤 사람은 '디딤돌'이라 한다는 것은 모든 장애물을 불평과 원망의 눈으로 보아서는 안 되고 再起(재기)와 跳躍(도약)의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는 肯定(긍정)의 마인드를 말합니다.

이렇듯이, 觀念(관념)의 사고방식을 否定(부정)으로 보는 사람은 남을 탓할 것이고, 肯定(긍정)으로 보는 사람은 내 탓으로 생각하고 그 것을 거울삼아 跳躍(도약)의 발판으로 삼을 것입니다.

속된말로 '세상에 믿을 놈 없다'란 말이 있지만 사회 지도층이라 하는 자들의 眞面目(진면목)을 보면 目不忍見(목불인견)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不法(불법)과 腐敗(부패), 性醜行(성추행)등도 모자라 지위적 권한을 이용해 온갖 갑질의 行態(행태)를 보여 온 국민의 憤怒(분노)를 유발시키고 있습니다.

잘못해서 세상에 죄과가 여실히 드러났다면 차라리 솔직한 인간 본연의 모습을 보이며 국민 앞에 잘못을 뉘우치고 응당한 죄의 댓가를 받는 것이 그 무엇보다 나을 것입니다.

稚拙(치졸)하기 짝이 없는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부끄럽고 汚辱(오욕)스러운 辨明(변명)은 그나마 조금 남아있는 자존심마저 팽개치는 것입니다.

심지어, 제도적 범위에서 이루어진 일이기에 법적으로는 하자가 없다고 우스꽝스러운 변명을 하고 있으니 꼴사나운 모습만 刻印(각인)시키고 있습니다.

기왕에 罪過(죄과)가 여실히 드러났다면 거짓으로 點綴(점철)된 辨明(변명)을 늘어놓거나 철면피처럼 모르쇠로 수작부리지 말고 不怨天 不尤人(불원천 불우인)의 말을 거울삼아 '내 탓이요'를 수 십 번 아니 수 백 번 되새기며 反省(반성)과 自肅(자숙)의 길로 접어드는 게 어쩌면 자신을 위해서 최선의 方策(방책)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