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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정진성의 감성을 깨우다... 席間函丈(석간함장)
[기고] 정진성의 감성을 깨우다... 席間函丈(석간함장)
  • 성동저널
  • 승인 2020.05.21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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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과 자리 할 때는 한 길 떨어져 앉다. (즉, 스승을 존경하다)
정진성 편집자문위원
정진성 편집자문위원

[성동저널] 매년 05월15일은 스승의 날입니다.

요즈음은 스승이 스승 같지 않다는 말도 많이 하지만 스승에 대한 權威(권위) 또한 예전 같지 않습니다.

스승은 누군가에게 知識(지식)을 傳達(전달)하고 人性(인성)을 갖추도록 인도하는 게 필연적인 직업이니 배우는 누군가에게 크나큰 影響(영향)을 줍니다.

유교의 경전 四書(사서: 대학.논어.맹자.중용)와 三經(삼경: 시경.서경.주역)에 禮記(예기)와 春秋(춘추)를 더해서 四書五經(사서오경)이라고 합니다.

예기의 曲禮(곡례) 상편에 손님을 접대하는 법을 보면 음식을 준비하여 손님을 대접할 때에는 간격을 약 한 길 정도 사이를 두고 상대한다는 席間函丈(석간함장)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음식을 준비하여 손님을 대접할 때에는 마주 앉지 않았으며 이야기를 나눌 손님일 경우 사이를 두고 상대한다는 이 말이 스승에 대한 禮遇(예우)의 말로 변화하였습니다.

예로부터, 자신을 가르쳐 학문을 깨우치게 하고 밝고 옳은 길로 인도하는 스승에 대한 예절은 스승과 함께 걸을 때는 앞서지 않고 그림자도 밟아서는 안 될 정도로 禮遇(예우)를 다한다는 雁行避影(안행피영)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또한, 스승의 은혜는 임금이나 아버지와 같다는 君師父一體(군사부일체)라는 말도 있듯이, 자식 보는 눈은 아비만 한 눈이 없고 제자 보는 눈은 스승만 한 눈이 없다는 말처럼 자식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도 부모가 가장 잘 알고, 가르침은 당연히 스승이 가장 잘 알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사실 따지고 보면 스승은 세상에 참으로 많습니다. 三人行 必有我師(삼인행 필유아사)라는 말처럼 세 사람이 길을 가도 그 중 하나는 반드시 내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이 있다는 뜻인데요,

이렇게 보면 스승은 수없이 많다고 할 수 있으나 진정으로 尊敬(존경)할만한 스승은 사실 매우 적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국가의 미래를 책임질 청소년의 교육을 담당하는 주체는 어쨌든 선생입니다.?

따라서, 그 무엇보다도 敎權(교권)은 살아 있어야 하며 선생의 존엄성 또한 반드시 確立(확립)되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작금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선생님께서 제자에게 訓戒(훈계)를 하였다고 해서 학부모가 학교로 쫓아가 暴言(폭언)을 하고 심지어 학생이 선생님에게 욕을 하는 것도 모자라 폭행까지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儒敎思想(유교사상)이 짙은 중국에서조차도 쓰촨성의 어느 중학생이 벽돌로 선생님의 머리를 수차례 내리쳐 重態(중태)에 빠트린 사건도 있었습니다.

오죽하면 '선생의 똥은 개도 안 먹는다'라는 속담이 있는데 그만큼 남을 가르친다는 것이 어렵고 힘이 들어 五臟六腑(오장육부)가 썩어서 그럴 것이라는 말입니다.

아무튼 敎育(교육)이 무너지고 敎權(교권)이 실추되면 나라의 將來(장래)가 暗鬱(암울)하게 펼쳐질 것입니다. 따라서 학생들의 人權(인권)을 부르짖기 전에 敎權(교권)을 먼저 살려야 마땅하며 선생님은 그 어떠한 일이 있어도 크게 尊重(존중)받아야 함에는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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