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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함성을 기억하라”... 성동구, 뚝섬만세운동 기념비 건립
“그날의 함성을 기억하라”... 성동구, 뚝섬만세운동 기념비 건립
  • 윤종철 기자
  • 승인 2021.02.25 14: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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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섬만세운동 기념비 사진
뚝섬만세운동 기념비 사진

[성동저널 윤종철 기자] “님들의 용기와 희생,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뚝섬만세운동 기념비)

성동구(구청장 정원오)가 뚝섬만세운동의 역사적 사실을 재조명하고 만세 운동의 정신을 후대에 계승하기로 했다.

구는 오는 3월 1일 삼일절을 맞아 성수동 뚝섬문화공원에 ‘뚝섬만세운동 기념비’를 건립한다고 밝혔다.

사실 뚝섬만세 운동기념비 건립은 지난 2013년 서울특별시 마을공동체사업으로 진행한 성동지역 근현대사찾기 사업에서부터 시작됐다.

구는 성동역사문화연구회와 함께 당시 사업을 추진하면서 한 주민으로부터 뚝섬에서 일어난 3·1 만세 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일제 강점기 당시 뚝섬에 우체국 관사, 지주집 등 많은 역사적 사료가 있는 것을 확인했다.

이에 따라 성동 역사문화연구회는 뚝섬만세운동의 자취을 찾고자 독립유공자 후손을 만나 관련된 내용을 확인하고 2016년 ‘뚝섬길 가득 채운 3월 함성 뚝섬 삼일운동’이라는 자료집을 발간했다.

뚝섬만세운동은 민족대표나 학생층으로부터 시작된 만세운동의 주체가 노동자 계층 등으로 바뀌어 가며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던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크다.

1919년 당시 경기 고양군은 각각 한지면과 뚝도면으로 現 왕십리와 성수동 뚝섬 일대였다.

뚝도면은 14개 동리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지금의 광진, 잠실, 면목동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지역이었으며 성수동 지역이 바로 면사무소 소재지로 뚝도면의 중심가였다.

당시 뚝섬 일대는 서울시민을 위한 땔감의 양륙지로 뚝섬 주민들의 대부분이 뗏목에 실려 온 땔감을 싣고 내리거나, 달구지나 지게로 땔감을 한양으로 옮기는 일에 종사하는 주민이 많았다.

이에 뚝섬만세운동의 주도층은 지역 특성상 우마차꾼, 지게꾼, 달구지꾼, 짐꾼 등 노동자 등 민초들이 주체였음을 알 수 있다.

현재까지 남은 뚝섬 지역의 만세 운동은 기록에 의하면 3월 12일과 당월 26일 두 차례 벌어졌다.

첫 번째는 둑도간이농업학교와 둑도 공립보통학교 학생을 중심으로 일어났다.

두 번째 운동이 있기 며칠 전부터 만세운동 관련 유인물이 곳곳에 뿌려진 것으로 보아 두 번째 운동은 조직적으로 준비하고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유인물을 보고 모인 민중들은 26일 당일 수탈과 탄압의 중심지인 면사무소와 헌병주재소를 포위하고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시위를 전개했다.

시위 끝에 헌병대 측과 교섭으로 해산하려던 찰라 증파된 일본 헌병 15명의 무차별 발포로 1명 사망 12명의 부상자가 속출하고 103명이 일제에 의해 체포됐다.

이 날 만세운동은 고양군에서 일어난 시위 중 가장 규모가 크고 격렬한 시위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편 기념비는 민중들이 만세를 외치는 두 팔을 모티브로 다른 석조가 만나 하나의 마음을 만들어 표현되는 성동구의 희망을 표현했다.

설치미술가 배수영 작가가 디자인하고 성동역사문화연구회의 자문을 통해 문구가 삽입됐다.

정원오 성동구청장은 “이번 건립된 뚝섬만세운동 기념비는 앞으로 초·중·고등학생 등 청소년들에게 역사적 교육자료로 활용될 것이라”며 “우리 이웃들이 서로서로 힘을 합쳐 일어난 뚝섬만세운동의 정신이 후대와 함께 오랫동안 기억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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