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동저널] 기원전 약 4세기경에 중국 도가의 사상가이며 철학의 시조인 老子(노자)가 지었다고 전해지는 책의 道德經(도덕경)을 보면 上善若水(상선약수) 라는 말이 나옵니다.
'최상의 선한 것은 물과 같다'라는 上善若水(상선약수)는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남과 다투지는 않는다면서 물을 善(선)의 標本(표본)이라 하여 으뜸으로 삼았습니다.
道德經(도덕경)에 나오는 물에 대한 예찬을 보면 水之七善(수지칠선)이라 하여 일곱 가지로 나뉘어 설명하고 있는데 이를 열거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물은 겸손하여 낮은 곳으로 흐르고, 마치 연못의 물처럼 모든 더러운 것도 받아들이고, 아낌없이 누구에게나 은혜를 베풀고, 말은 훌륭하고 믿음이 있으며, 세상을 씻어 깨끗하게 다스려지게 하고, 일을 맡으면 잘 융화하여 처리하고, 움직임은 옳다고 여길 때를 골라 행한다" 라고 했는데 이렇듯 물에 대한 예찬이 아주 강했습니다.
사실 水之七善(수지칠선)은 論語(논어)의 衛靈公(위령공) 편에 나오는 孔子(공자)의 말에 단적으로 표현한 부분이 있습니다.
'군자는 자긍심을 지니지만 다투지는 않는다'라는 '矜而不爭(긍이부쟁)'의 말로 함축할 수 있는데요, 自矜心(자긍심)이 지나치면 自慢(자만)이 되겠지만 최소한의 自矜心(자긍심)마저도 없으면 阿諂(아첨)과 屈伏(굴복)만 남는다고 일찍이 孔子(공자)는 가르침을 주었던 것입니다.
즉, 물과 같이 만물을 길러주고 키워주지만 자신의 공을 남과 다투려 하지 않고 낮은 곳에 임하기에 바다가 될 수 있는 것처럼 君子(군자)의 정신도 이러한 자세를 이어받아 自矜心(자긍심)은 갖되 남과 다투어서는 안 된다고 뜻 깊은 가르침을 주었던 것입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坎而後止(감이후지)도 흐르는 물이 구덩이에 이르면 헤어나려 발버둥치지 말고 그저 구덩이를 다 채우고 나서 벗어나려는 기다림의 미덕이 있다는 물에 대한 예찬입니다.
이 말의 유래를 보면 송강 정철, 노계 박인로, 고산 윤선도와 더불어 조선 4대 문장가로 손꼽히는 조선 중기의 문신 象村(상촌) 申 欽(신흠: 1566~1628)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선조의 13남 영창대군을 옹립하려 한다고 대북 일파의 무고 때문에 정변이 일어난 癸丑獄事(계축옥사:1613년)로 조정에서 쫓겨나 지금의 김포 산기슭에 초가를 짓고 살았습니다.
바로 그 초가집을 이름 하여 '물이 구덩이를 만나 멈춘 곳'이란 뜻의 '坎止(감지)'와 움집이라는 '窩(와)'가 합쳐 '坎止窩(감지와)'로 불리게 됐다고 하는데, 어쨌든 그가 '坎止窩(감지와)'에 살면서 말하기를 “처음부터 구덩이에 빠지지 말았어야 했지만 이미 빠졌으니 헤어나려 발버둥 쳐도 소용없네. 내가 행한 일이 부끄럽지만 마음만은 형통하여 평소와 다름없네. 다행이 그칠 곳에서 그치니 天命(천명)을 깨달아 즐기며 順應(순응)할 것이네”라고 세상에 고했다고 합니다.
이렇듯 하늘의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그 이치를 어기고 남과 다투고 헤치려는 것은 조화롭게 어울리려는 마음이 부족하다고 한 것입니다.
어쨌거나 坎而後止(감이후지)라는 말처럼 구덩이에 빠졌다고 급히 서둘러 빠져나오려고 만병의 근원인 온갖 스트레스를 뒤집어쓰지 말고, 물이 차면 자동으로 헤어 나올 수 있듯이 잠자코 기다림의 美學(미학)을 깨닫는 것도 나의 건강을 지키는 방법 중의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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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는 수천년 유교사회입니다. 공자님 이전의 始原유교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예수님 이전의 구약성서 시대에 해당됩니다. 하느님(天).神明,조상신 숭배가 유교의 큰 뿌리입니다. 유교는 국교로, 주변부 사상으로는 도가나, 음양가, 묵가사상등이 형성되었고, 법가사상은 이와는 다른 현실적인 사상이며, 국가의 통치에 필요한 방법이었습니다(진나라때 강성하고, 유교나 도교와 달리, 한나라때 율령이 반포되어 이후 동아시아에 유교와 별도의 성격으로 국가통치에 활용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