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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정진성의 감성을 깨우다... ‘단장의 미아리 고개’
[기고] 정진성의 감성을 깨우다... ‘단장의 미아리 고개’
  • 성동저널
  • 승인 2024.06.26 15: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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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성 성동저널 편집자문 위원
정진성 성동저널 편집자문위원
정진성 성동저널 편집자문위원

[성동저널] 斷腸(단장)은 끊을 단(斷), 창자 장(腸)으로 '창자가 끊어지다'라는 뜻으로 쓰입니다.

이 말의 유래를 잠시 살펴보면, 중국 '쓰촨'과 '후베이'의 경계를 이루는 양쯔 강 중류의 협곡인 三峽(삼협)이 있는데, 중국에서도 험하기로 유명한 곳입니다.

진나라 桓 溫(환온)이 촉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수많은 배에 군사를 나누어 싣고 여기를 지나가던 중이었습니다.

협곡을 지나면서 한 병사가 새끼 원숭이 한 마리를 잡았는데, 새끼 원숭이가 탄 배를 쫓아 어미 원숭이가 슬피 울며 백여리를 따라왔습니다.

그러다가 배가 강어귀 가장자리에 붙자 어미 원숭이는 새끼가 있는 배 위로 뛰어오릅니다.

어미 원숭이는 오직 자식을 구하려는 일념으로 애를 태우며 달려왔기 때문에 배에 뛰어오르자마자 죽고 말았습니다.

배에 있던 병사들이 원숭이의 배를 가르자 창자가 토막토막 끊어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즉, 자식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슬픔에 백여리를 따라오면서 창자가 이미 토막 난 것입니다.

서울 강북구에 '미아리 고개'가 있습니다. 우리는 '斷腸(단장)의 미아리 고개'라고 합니다만, 彌阿洞(미아동)은 여러가지 유래가 있는데요,

먼저 彌阿(미아)라는 지명은 '저승으로 넘어가면 다시는 이승으로 되돌아올 수 없다'는 불교 용어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되너미 고개를 한자어로 敦岩峴(돈암현)이라고 하는데, 지금의 돈암동도 여기서 유래된 동명입니다.

이 敦岩峴(돈암현)을 당시에 일명 彌阿里(미아리) 고개라고 하여 유래된 설이 있으며, 성북구 정릉동에 있는 옛 지명 沙阿里(사아리)가 彌阿里(미아리)로 잘못 變音(변음) 되었다는 설과, 미아 제7동에 있는 골당곡에 오랬동안 彌阿寺(미아사)라는 절이 있었기 때문에 彌阿洞(미아동)이라 불려졌다는 설이 있습니다.

미아리고개는 지금이야 평평하게 깍아 신시가지가 되었지만 당시에는 고개가 상당히 높았다고 합니다. 6.25전쟁 당시 북한군이 서울에 처음으로 진입한 길목이 바로 미아리고개입니다.

또한, 일제 강점기 때 미아리고개 너머에 조성된 공동묘지가 있었는데, 상여가 이 고개를 넘어가는 동안 哭聲(곡성)이 끊이질 않아 ‘한 많은 미아리 고개’라고 부른 것입니다.

아무튼, 이 미아리고개는 6.25전쟁 당시에 수많은 애국지사와 저명인사들이 쇠사슬에 묶인 채 이 고개를 넘어 북으로 납치되어 간 애절한 사연을 담은 고개입니다.

사람은 살면서 누구나 행복을 추구합니다. 고종명은 五福(오복) 중의 하나로 사람이 제명대로 살다가 편안히 죽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죽음을 맞이하는 것도 견디기 어려운데 무슨 놈의 악업을 쌓은 것도 아닐진데,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할 정도의 恨(한)을 남긴다면 비통에 젖어 창자가 끊어질 만도 할 것입니다.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한다는 死不暝目(사불명목)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피맺힌 한이 미아리 고개에 켜켜이 응축되어 있으니 '斷腸(단장)의 미아리 고개'라 불려 질만 합니다.

뼈아픈 역사의 과거를 새삼 되새겨 보며, 끊임없이 부국강병해야 할 이유를 후대에 알리는 좋은 예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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