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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을 보내며
송경민 성동구 의회 의원 (민주당 비례대표)
노무현 대통령을 보내며
송경민 성동구 의회 의원 (민주당 비례대표)
  • 송경민 의원
  • 승인 2009.06.08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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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경민의원     © 디지털 성동저널

1992년 여름쯤, 부산역 광장 오른편에 있는 광장호텔 기자회견 장에서 당시 노무현 변호사를 처음 가까이서 보았다. (당시 부산에선 노무현 변호사를 줄여서 ‘노변’이라고 부르곤 했다) 물론 그전 국회의원 때나 아니면 무슨 행사 같은 때 멀리서 보기도 했지만, 내가 노무현이란 인물을 꼼꼼히 뜯어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물론 당시 꽤 강성 운동권이었던 나는 기성 정치권에 발담은 인물들에 대해서는 썩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고, 그런 시각으로 보아서인지 노무현 변호사에 대한 첫 인상은 정치인답지 않게 정장이 잘 어울리지 않는 꽤나 촌스러운 사람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뒤 1997년 4월, 나도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고, 아마 그 즈음 노무현 변호사도 종로 보궐선거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이 되는 등 서울로 올라와 활동을 한 것으로 기억한다. 개인적으로 친한 선후배들이 노무현 변호사 주변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분을 따로 만나보진 못했다. 한번 인사나 하라며 소개해주겠다는 두세 번의 얘기가 있었지만, 당시 시민단체 활동을 하며 정치권 인사와는 좀 거리를 두려던 내 결벽증 때문에 그냥 관두라고 했던 기억이 나기도 난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 누구를 막론하고, 무슨 무슨 사모(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라며 특정 개인을 지나치게 미화하고 추종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이면 누구나 장점과 단점이 있게 마련이고,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되 비판과 토론이 활발해야 서로간의 관계가 오래가는 것이라 생각해왔다. ‘우리가 함께 있어야 서 있을 수 있으되 저마다 줄기 새로 허허로운 바람을 놓아두지 않으면 이렇게 썩어 들어가는 것을 보아라’ 라는 도종환 시인의 문고병에 나오는 시구처럼, 무조건 사랑하는 것은 진정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오래전부터의 내 생각이었다. 그래서 2002년 대선 때도 나는 솔직히 노란 물결 속에 있지 않았고, 그저 마음속으로 대한민국 발전을 위해 부디 잘해주시길 바랄 뿐이었다.
5월 23일 대통령께서 돌아가셨다는, 그것도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다는 얘기를 처음 듣고, 그토록 강한 분이 그랬을 리가 없다는 생각에 오보이기를 바라고 또 바랬다. 그날 밤,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모두는 각자의 이유로 통곡하고 말았다. 한 명은 노무현 대통령 당선되던 날 너무너무 행복했는데 이렇게 가시다니 하면서 울고, 누구는 평소 대통령 욕을 너무 많이 했는데 미안해서 가슴이 찢어진다면서 울고, 또 한 명은 토론할 게 너무 많았는데 토론할 기회도 안 주고 가버렸다고 울고, 또 한명은 아이들에게 대통령이 자살하는 이 현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냐며 새벽까지 울고 또 울었다. 봉하마을에도 다녀오고 분향소에도 다녀왔건만, 일주일 내내 잠깐 혼자 있기라도 하면 눈물이 흘러 주체하질 못했다.
5월29일 오전 경복궁 영결식장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상징인 노란 머리띠를 처음으로 내 머리카락에 매어보았다. 2002년 대통령 선거 때도 한번도 만져보지 않았던 노란 머리띠, 노란 풍선을 그 분이 돌아가시고서야 내 품에 받아들였다. 아무도 없는 부엉이 바위에서 몸을 날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그 찰나의 순간 도대체 무슨 심정이셨을지, 차갑고 딱딱하기 그지없는 바위덩이에 머리와 몸이 부딪히는 순간, 얼마나 외롭고 아프셨을지..... 온몸이 산산조각이 난 그 순간의 고통이 어떠했을지.....
물어보고 싶은 것도 많았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그 누군가 아방궁 같다던 봉하마을에 가서 사저가 진짜로 아방궁 같은지도 한번 보고, 대북특검은 왜 하셨는지, 분양가 원가공개는 왜 반대하셨는지, 느닷없는 대연정은 왜 하자고 하셨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잘한 것 잘못한 것 다 펼쳐놓고 이거는 왜 이랬고, 저거는 왜 저랬고, 다음엔 또 어떻게 하는 게 맞는 건지......김해 깡촌 봉하마을 논두렁에 퍼질러 앉아 실컷 얘기해 보고 싶었었다.
여전히 내게 인간 노무현은 어렸던 시절, 부산역 앞 광장호텔에서 만난 그 모습 그대로이다. 어색한 양복, 조금 비뚤어진 넥타이, 기자들 앞이라 정치인인척 포즈를 잡아보려고 애쓰지만 왠지 좀 어울리지 않는......정장 보다는 허름한 잠바 차림에 아이들과 장난치는 소탈한 모습이 더 잘 어울리는.....여전히 실감나진 않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내 곁을 떠났고, 이제 이 짧은 기억은 두고두고 내 인생에 부엉이 바윗돌 만큼의 무게로 남을 것이다.
두서없는 일기 같은 이야기를 마무리 지을까 한다. 노무현 대통령께서도 부산에 계실 때 분명히 한번쯤은 들어보셨을 시, 프랑스 유학이 꿈이었던 젊은 시절 내 삶을 결정적으로 바꾸어놓은, 선배처럼 죽을 자신은 없지만 선배가 추구했던 그 꿈을 살아서나마 이루어가겠다고 어린 날의 내가 굳게 결심하게 만든, 1988년 10월 10일 투신해 망월묘역에 묻혀 있는 고 양영진 열사가 마지막으로 남긴 유고시를 노무현, 나의 대통령께 바친다.


 
내 고여운 연인에게


양영진


 

코스모스가 피어 있어 잠들지 못하는 밤

아니 잠들어서는 죄를 짓는 밤

그대 생각을 합니다

새벽은 아직 멀었는데

바람이 거세게 붑니다

정작 내가 지켜야 할 것은

이렇게 밤을 지새며 지켜야 하는 것은

못다한 내 사랑이거늘

내 고여운 그대여

생각하면 할수록

코스모스 향기 코끝을 후벼대고

따뜻한 그대 숨결같은, 햇살 퍼지는

새벽은 아직 먼데 있습니다

달디단 그대 살내음 대신

살상용 무기 섬뜩함을 느끼며

아, 어딘가 숨어있을 새벽을

발 돋우며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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