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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호(東湖) 풍경
동호(東湖) 풍경
  • 고재득 성동구청장
  • 승인 2003.03.12 1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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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적에 광희문을 통해 도성을 빠져 나오면 동녘으로 끝없이
전개된 들녘이 있었다. 비록 작은 구릉은 있었지만 그곳은 마치
벌려 놓은 손바닥처럼 넓은 평원이었고 조선의 문신 강희맹은
이 평원을 "따스한 기운이 평야에 들어 푸른 자리를 깔았다(煖入平
蕪綠似茵)"라고 읊었다.

흔히 동교(東郊) 또는 전교(箭郊)로 불리운 이 푸른 들녘을
중랑천과 한강이 유유하게 끼고 돌면서 江上의 크고 작은 섬들과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었는데 특히 중랑천과 한강이 합류되는
두뭇개(두물개 - 현재의 옥수동 江岸)지역은 한도십영(漢都十詠)
의 하나로 뽑힐 만큼 뛰어난 풍광을 지니고 있어 동호(東湖)라
이름하였으며 누각과 정자가 많기로 유명했다.

그러나 숨가뿐 근대화의 여정을 거치면서 성동의 그 아름답던 풍광
은 도시의 난개발의 바람속에 점차 사라져 버리고 이제 우리는 한폭
산수화만을 통해 그 자취를 더듬을 수 있을 뿐이다.

지난 95년 민선 초대 구청장으로 취임한 후 여러 가지 어려움
이 많았다. 선거 직전에 광진구와 분구되면서 낙후 지역이 많이
편입되었고 서울의 평균치에 미달하는 낮은 재정 자립도에 도시
기반시설과 생활 환경 또한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지역 발전이나 생활 환경의 향상도 급선무였지만 민선 자치를
실현하겠다고 나온 자치 단체장으로써 구민을 지역 공동체란 한
테두리로 최대한 접근시켜 가는 방안이 시급하다고 판단했다.

때마침 관내 전역에 시행된 주택 재개발로 인해 우리 성동은 비록
낙후 지역이지만 오히려 공고하게 유지되고 있던 주민들의 유대감과
인보(隣保)정신, 그리고 지역의 정체성이 크게 흔들리는 상황
을 맞고 있었다.

주민의 연간 이동율이 20%에 달하는 상황 속에서 지역 정체성을
유지시킬 수 있는 실체적인 방안에 대해 고심하던 중 그 지역의
역사와 전통성을 일깨울 수 있는 어떤 문화적 코드를 마련하여
구민들에게 정서적인 일체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관건이
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제일 먼저 착수한 일이 바로 우리구의 대표지역이라 할
수 있는 왕십리를 중심으로 문화적 인프라를 확장해 상징성을 키워
나가면서 지역 문화를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늘려 주민들로 하여금
점차 소멸되고 있는 지역 정체성과 공동체 의식을 최대한 일깨우도록
하는 일이었다.

왕십리(往十里) 이야기
아마 왕십리(往十里)라는 지명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이다. 무학대사가 조선의 도읍지를 찾고 있을 때 노인으로 현령
(顯靈)한 道詵大師가 십리를 더 가라고 한 말에서 유래되었다는
왕십리는 그동안 중심 사회에서 소외된 서민들의 애환 어린 삶의
터전이었으며 우리에게는〈59년 왕십리〉라는 김흥국의 노래나
김소월의 시, 조해일의 소설〈왕십리〉로 더욱 가깝게 느껴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왕십리에 가면 조금 어려웠지만 마음만은 풍요로웠던
소박한 우리들의 지난날의 모습을 만날 것 같고 우리와 닮은
친근한 풍모의 사람들과 쉽게 어울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들
을 하게된다.

젊은 시절 이곳 왕십리에 잠깐 머물러 지내던 기억이 있는데 그로
부터 20여년이 지나서 다시 찾은 왕십리 거리는 예전과 비교해
별로 변한 것이 없다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더욱 정이 가긴 했지만
서울의 눈부신 발전에 비해 다소 초라하고 낙후된 모습을 대하니
씁쓸한 마음을 금할 길 없었다.

왕십리에 대한 향수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서울의 부도심권
으로 예정된 이곳의 면모를 새롭게 하기 위해 처음 시작한 사업이
소월 시비(詩碑) 건립이었다.

「왕십리」라는 아주 서정적인 시 뿐 아니라 아름다운 우리말로
민족의 정서인 한(恨)을 표현했던 소월 이야말로 왕십리의 상징
적인 이미지에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왕십리 로터리 중앙에 아담한 소월의 흉상과 시비를 건립한데
이어 이 지역의 문화 시설 보강을 위해 행당1동 청사가 있던
자리에 630석 규모의 첨단 시설을 갖춘 개가식(開架式) 전자
도서관인 「성동 문화정보센터」건립을 착수하여 98년도에 문을
열었다.

향토 문화 발전의 촉진을 위해 97년도에 성동 문화원을 개원
하였고 그 첫 번째 문화 사업으로 왕십리의 이미지를 알리는
전국 규모의「왕십리 가요제」를 추진하여 다음해 10월 청명한
가을 바람 속에 제1회 가요제를 개최하였다.
혹시 소모성 행사라는 오해를 받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불식하고
해마다 참가자의 규모와 수준이 높아지면서 네 번째 열렸던 지난해
에는 전국의 가수 지망생이 쇄도하고 관람객만도 15,000명을 넘어
이제는 확실한 지역 가요제로 발전해 가고 있다.

또한 문화 정보센터와 맞닿은 동부 수도사업소, 성동 문화
회관의 담장을 전부 헐어내고 야외음악당을 포함한 7,500㎡
규모의 「성동 문화광장」을 조성하여 주민들께 돌려 드릴 수 있었다.
날씨가 풀리면 이곳에서는 주말마다 토요 문화마당을 비롯하여 주민
자치센터 각 동호회의 발표회 등 다양한 문화 행사가 지속될 것이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문화공간으로 자리잡아 갈 것이다.

우리 구는 분구로 인해 현재까지 임시 청사를 빌려쓰고 있다.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왕십리 역 뒤편에 청사를 건립 중인데
내년에 완공될 성동 종합행정마을은 구 의회와 교육청, 우체국,
은행, 국민보험공단 등의 기관 및 다양한 문화 공간과 각종 체육 시설
을 갖춘 청소년 수련원이 함께 들어서게 된다.

왕십리 전철역과 바로 인접한 이곳은 전국에서는 처음으로 복합
행정 서비스와 주민 여가·문화생활을 함께 조화시키는 새로운
모델케이스로 주목받게 될 것이다.

이밖에 왕십리 로터리에 새마을회관으로 쓰던 구(舊)소방서
건물을 헐어낸 후 음악이 흐르는 아담한 전시·공연 공간을 갖춘
왕십리 문화공원을 작년 연말에 개장하였다. 일각에서는 時價 100
억원에 가까운 왕십리 최고 요충지의 이 땅을 매각해서 부족한
구 재정에 충당하자는 의견이 강하게 제시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여러 공공 건물이 선점해 지역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이 지역에 녹지가 어우러진 문화공간을 조성해 왕십리의
이미지를 바꿔나가는 것이 장기적으로 우리 지역에 더 큰 이익
으로 돌아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주민에게 되돌려 준 작은 공간
그리고 도심 한복판에서 열리는 작은 음악회, 상상만 해도 기쁘기
그지 없다.

우리구는 작년도에 왕십리 부도심권 계획을 확정시켰다. 그리고
올해 안에 상당 규모의 「왕십리 민자(民資) 역사」가 착공 될
예정이다. 2008년까지 분당 전철 노선이 완공된다면 이제 왕십리
는 서울에서는 유일하게 지하철 4개 노선이 교차하는 교통과
상권의 요충지로 확실하게 발전해 갈 것이다.

성동의 또 하나의 상징 지역인 35만평의 뚝섬 지구 또한
어떤 형태로든 주민을 위한 대규모 휴식 공간으로 조만간 새롭게
개발하게 된다. 마장로를 따라 서울시의 청계천 복원사업이
펼쳐지고 또한 왕십리 뉴타운 사업이 실행된다면 우리 성동은
아마 앞으로 수년 내에 새로운 지도를 만들어야만 할 것이다.

나는 민선 3기에 출마하면서 주민들에게 우리 성동을 물의
도시로 만들어 가겠다고 약속하였다. 청계천과 중랑천 그리고 한강
이 휘감아 돌아가는 지역 곳곳에 비록 규모는 작지만 아기자기한
분수와 더불어 예쁜 다리를 놓고 누구나 편히 쉴 수 있고 심신을
단련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을 지속적으로 만들어 가는 희망을
얘기했었다.

살면서 느끼는 기쁨의 대부분은 깜짝 놀랄 새로운 변화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소소한 인간관계에서 찾아오는 것 같다.
간소한 삶이야말로 행복을 누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믿음으로
나는 계속해서 작지만 아름다운 공간을 만들고 거기에 음악이
흐르도록 해 삶에 지친 사람들이 여유를 되찾을 수 있도록 성심껏
노력해 나갈 것이다.

모두가 일상에 쫓겨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가끔은 비
내리는 왕십리 거리에서 소월의 시향(詩香)에 젖어 봄직하다.
함께 사는 이웃을 서로 먼저 아껴주고 그들과 함께 부대끼며 정을
나누는 사회야말로 우리가 지향하는 아름다운 지역 사회의 풍경
이 아니겠는가!

그 옛날 자연이 수려하기로 이름났던 성동, 지금은 잃어버린
동호(東湖)의 그 아름답던 풍경을 조금이나마 되살려 열심히
일하며 소박하게 살아가는 서민들이 따뜻하고 포근한 이야기를 엮어
갈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마지막 민선 3기의 소임을 수행하고
있는 나의 간절한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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