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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사무소 마을문고를 어린이 도서관으로!
동사무소 마을문고를 어린이 도서관으로!
  • 김소희 관장
  • 승인 2003.08.27 1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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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내가 성동구에 사설 어린이도서관 문을 열었을 때 사람들은 “어린이도서관이 뭐예요?” 하며 물어왔다. 그런데 요즘은 “아, 어린이도서관!” 한다. 어느 방송사에서 전국에 어린이도서관 하나씩 만들자고 외쳐준 덕인 것 같다. 그 방송국의 ‘선의’에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선심’(?)이 보태져 여기저기 짓겠다는 ‘2만 여 평 규모’의 어린이도서관 얘기를 들으면 “와- 환상적이다” 싶지만 내심 걱정도 있다.

또 어느 번잡한 시내에, 커다랗기만한 어린이도서관이 들어선다면? 큰 맘 먹고 집을 나서 아이와 함께 번잡한 시내의 큰 도서관을 찾았던 엄마들이 겪었을 일을 생각해 보자. 맘 편히 책을 들춰보지도 못한 채 아이들이 무슨 사고나 치지 않을까, 혹은 아이를 잃어버릴까봐 단속만 하다가 돌아오진 않았을까. 아이들도 “쉿! 조용조용-”이라는 경고문 아래서 숨막히게 앉아 있다가 오진 않았을까? 그렇다면 엄마나 아이에게 도서관 가는 것은 그야말로 ‘일’이었을 게 뻔하다.

아이들은 작다.
그 아이들 도서관의 규모는 작아도 좋다. 대신 더 가까운 곳에 있어야 한다.

어린이도서관은 아이들에게 “쉿! 조용히”를 강요하지 않는 자유롭게 열린 공간이어야 한다. 책상에 꼿꼿이 앉아 책을 보건 누워 보건, 자기 보던 책 두고 친구 책에 욕심 내 덤벼들든, 아이들에게 맡겨야 한다.

그런 바램을 가지고 지역을 둘러보았더니 아주 탐나는 자리가 있었다. 바로 동민의 집(주민자치센터)의 마을문고이다. 옛 동사무소가 주민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개방한다며 ‘주민자치센터’ 혹은 ‘동민의 집’으로 바뀌면서 마을문고도 깨끗하게 새 단장을 했다.

마을문고!

사설 어린이도서관들처럼 월세부담이라는 고민이 없어 안정적이고, 운영위원회에 참여하는 지역 유지들이 든든한 후원자가 될 수 있다. 게다가 컴퓨터 등의 주변기기를 갖추고 있으며 주민들이 무료로 도서대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얼마나 좋은 조건인가.

그러나 그 좋은 조건에도 “마을문고에 가면 볼 책이 없다”는 비판을 받는다.
성동구 ㅅ동 마을문고 한 운영위원은 “문고의 예산은 책 구입비와 일반 운영비인데, 일반운영비는 운영위원들이 내는 회비로 충당하고, 책 구입비는 구청에서 분기별로 30만원씩 지급된다”고 했다. 문고의 1년 책 구입비는 120만원인 셈이다. 내가 운영하는 어린이도서관의 한달 신간 구입비가 평균 50만원인 것에 비하면 턱없이 적다. 예산이 적은데다 책을 분기별로 구입하다보니 신간을 갖추기가 어렵고, 그나마 어린이책 뿐만 아니라 성인, 청소년 등 전 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책을 구입해야 하니 책의 수량은 물론 수준도 주민의 요구에 미칠 수 없는 조건이라고 했다. 그러다 보니 마을문고는 책을 읽으러 오는 주민보다 지역 유지들의 사랑방이 되는 경우가 더 많다. 조용하게 비어있는 전시공간에 그치거나.

만일 마을문고를 어린이도서관으로 바꾼다면?

▲ 아이들이 걸어다닐 만한 거리에 있다.
▲ 이동능력이 있는 보통어른들까지 다 배려하자면 지금의 예산으로는 턱없다. 욕심이다. 어린이라는 대상에 한정해 보다 좋은 책을 더 많이 구입할 수 있다.
▲ 동민의 집은 공무원과 어른들이 늘 있는 안전한 공간이다. 보호자가 옆에 있다는 뜻이다.
▲ 아이들이 다니는 곳에는 엄마들이 따르게 된다. 지역 유지들의 공간에서 이젠 지역의 젊은 부모, 가족들이 모이는 공간이 될 것이다. 아이들을 매개로 만난 어른들이 ‘좋은 책’과 아이에 대한 정보를 나누고 이웃이 되는 것이다. 동민의 집 취지와 맞는다.
▲ 학교마다 녹색어머니회가 있듯이 지역 마을문고를 어린이도서관으로 했을 때 가칭 ‘지킴이’ 엄마들을 꾸릴 수 있다. 자원에 의한 봉사대가 생기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동네의 모습도 보다 생기 돌지 않을까?

일본의 경우는 자치단체의 장을 뽑을 때 도서관 건립이 공약으로 제시되고, 사람들이 집을 살 때 도서관이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기준의 하나로 삼는다. 그래서 도서관이 없는 자치구에서는 도서관 건설 요구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어린이문고와 이동도서관 확대는 거의 주민운동으로 추진되는 터라 주민들은 예외 없이 도서관협의회를 설치하고, 지자체들은 매년 도서관백서를 발행해 평가를 받으면서 도서관운동에 전력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다른 나라만 부러워할 일은 아니다. 국민참여정부가 동사무소에 있는 마을문고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고민한다면 좋은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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